트레이싱 논란: 윈드브레이커 작가와 AI는 왜 다르게 평가받을까?
네이버 웹툰을 대표하는 스포츠 장르 웹툰 중 하나였던 ‘윈드브레이커’가 트레이싱 논란 끝에 조용히 연재를 종료했다. 작가 조용석은 일부 장면이 일본 만화의 이미지와 유사하거나 거의 동일하게 표현되었다는 점을 인정하며, 자신의 잘못을 직접 고백했다. 결말은 네이버 웹툰 플랫폼이 아닌 작가 개인 블로그에 요약본 형태로 공개되었고, 해당 작품은 연재 목록에서 삭제되었다.
윈드브레이커는 어떤 웹툰인가?
‘윈드브레이커’는 자전거를 소재로 한 스포츠 웹툰이다. 박진감 넘치는 레이스 장면과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어우러지며, 오랜 기간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되어왔다. 작화와 연출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아왔고, 고정 팬층도 두터운 작품이다. 특히 패션 요소나 인물 묘사에서 세련된 스타일을 추구해왔다는 점에서 트레이싱 논란은 더욱 큰 실망감을 안겼다.
도덕적 비난은 타당하다
웹툰 작가가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베끼고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원작자의 창작물에 대한 존중 없이 베껴 그린 것은 분명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특히 유료 콘텐츠로 수익을 내는 상황에서 이러한 행위는 법적 책임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AI의 경우는 왜 다른가?
그런데 이 사안과 매우 흡사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AI 생성 모델이다. 대표적으로 ChatGPT와 같은 언어 모델이나 DALL·E 같은 이미지 생성 모델은 수많은 공개 이미지와 문서를 학습한다. 이 학습 과정은 일종의 ‘트레이싱’이라 볼 수 있다. 엄청난 양의 이미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사한 스타일의 결과물을 생성하며, 어떤 경우에는 거의 똑같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원본과 유사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ChatGPT 가 만든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는 한때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이미지를 자신의 프로필 사진으로 쓰며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하지만 누구도 OpenAI나 Sam Altman을 향해 ‘표절’이라고 비난하지 않았다.
실제로 지브리의 창립자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AI 이미지 생성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낸 적이 있다. 그럼에도 해당 서비스는 계속 운영되었고, 사회적 반발은 거의 없었다. 이는 조용석 작가의 경우와는 너무도 다른 사회적 반응이다.
왜 AI는 비난하지 않을까?
이 온도차는 어디서 오는 걸까? 첫째, AI는 인간이 아니다. AI가 무단으로 베끼는 것에 대해 ‘윤리적 책임’을 직접적으로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AI를 도구나 기술로 인식하기 때문에 도덕적 잣대를 동일하게 적용하지 않는다.
둘째, AI는 ‘직접 복제’가 아니라 ‘통계적 유사성’을 기반으로 이미지를 생성한다. 반면 트레이싱은 특정 포즈나 구도를 거의 동일하게 따라 그리는 방식이기에 훨씬 명확한 “표절”로 인식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AI가 학습한 데이터와 생성 결과 사이에 그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깊은 유사성이 존재할 수 있다.
셋째, 창작자라는 인간 주체가 개입한 행위와, 기계적 생성이라는 차이 때문이다. 작가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참고 자료를 선택하고, 이를 베껴 그렸다. 반면 AI는 누구의 허락도 없이, 자동으로 수많은 이미지를 참고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여줄 뿐이다.
기술이 만드는 불균형한 책임
결국, 이는 인간과 기술 사이의 책임 구조의 불균형을 드러낸다. 작가는 명확한 주체이고, AI는 주체가 없기 때문에, 도덕적 비판은 사람에게만 집중된다. 하지만 앞으로 AI가 더 정교해지고 창작의 영역에 깊이 관여하게 될수록, 이 책임의 온도차에 대한 괴리는 더 심화될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단순히 AI를 옹호하거나 작가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만든 기술이 어디까지 창작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윤리와 법은 어떻게 조정되어야 하는지를 질문할 때다.
웹툰 작가 한 명이 일으킨 트레이싱 논란은, 사실 AI가 이미 대규모로 실행 중인 문화적 흐름과 충돌하고 있다. 이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할까? 비난의 강도보다 중요한 건, 기준의 일관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