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사라진 반딧불이를 찾아서

최근 흥미로운 블로그 글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Learning Basic Electronics By Building FireFlies라는 제목의 이 글은 전자공학을 전혀 모르던 한 개발자가 사라진 반딧불이를 그리워하며 직접 인공 반딧불이를 만들어보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어느 날 Astable Multivibrator라는 신기한 회로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이 회로를 보고 “명시적인 타이머 없이도 자동으로 ON과 OFF를 반복할 수 있는 마법 같은 회로”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전압과 전류의 차이조차 몰랐던 그에게 저항, 커패시터, 트랜지스터는 모두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마침내 5개의 “반딧불이”를 완성한 그는 어둠 속에서 부드럽게 깜빡이는 모습을 보며 “순수하고 특별한 기쁨”을 느꼈다고 회고합니다. 그는 7-8년 전 첫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울 때와 같은 깊은 몰입감과 흥분을 다시 느꼈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이 글을 읽으면서 궁금해졌습니다. 대체 Astable Multivibrator가 무엇이길래 전자공학 초보자에게 “마법”처럼 느껴졌을까요?

Astable Multivibrator란 무엇인가?

Astable Multivibrator라는 이름을 단어별로 나누어보면 흥미로운 의미가 드러납니다.

  • A(없음) + Stable(안정) = 안정된 상태가 없음
  • Multi(다중) + Vibrator(진동) = 여러 상태를 진동하며 변화

결국 이 회로는 안정된 상태 없이 계속해서 두 상태 사이를 자동으로 왔다 갔다 하는 진동 회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이것이 전자공학 초보자에게 “마법” 같이 느껴질까요? 생각해보면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 스위치를 누르지 않아도 스스로 켜졌다 꺼졌다 함
  • 마이크로컨트롤러나 프로그래밍 없이도 “자동화” 구현
  • 몇 개의 간단한 부품만으로 “지능적” 동작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마법 같지 않나요?

기본 부품들 이해하기

복잡한 회로를 이해하기 전에 기본 부품들의 정체부터 파악해봅시다. 이들은 각각 우리 일상의 친숙한 것들과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 트랜지스터 = 똑똑한 스위치

먼저 트랜지스터는 똑똑한 스위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일반 스위치는 손으로 눌러야 켜지지만, 트랜지스터는 전기 신호를 받으면 자동으로 켜집니다. 더 놀라운 점은 작은 전기로 큰 전기를 제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트랜지스터에는 세 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 베이스(Base): 문지기 👮‍♂️
  • 컬렉터(Collector): 입구 🚪
  • 이미터(Emitter): 출구 🚪

작동원리는 간단합니다. 베이스에 전기가 오면 컬렉터에서 이미터로 전기가 흐르고, 없으면 차단됩니다.

🧱 저항 = 물의 수도꼭지

저항은 물의 수도꼭지와 같습니다. 전기의 흐름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죠:

  • 꼭지를 조금 열면 → 물이 천천히 (저항 크게)
  • 꼭지를 많이 열면 → 물이 빠르게 (저항 작게)

🔋 커패시터 = 물통

커패시터는 물통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 전기를 저장했다가 방출함
  • 물통에 물을 모았다가 한번에 쏟아내는 것과 같음
  • 천천히 채워지고, 어느 순간 갑자기 비워짐

두 친구의 신기한 깜빡이 게임

이제 이 부품들이 어떻게 조합되어 마법 같은 일을 벌이는지 알아봅시다. Astable Multivibrator의 작동 원리를 두 친구의 게임으로 설명해보겠습니다.

게임의 등장인물과 규칙

이야기의 주인공은 트랜지스터A트랜지스터B입니다. 이 두 친구는 각자 하나씩의 “물통”(커패시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특별한 게임 규칙이 있습니다:

  1. 한 친구가 깨어있으면 → 상대방은 반드시 잠들어야 함
  2. 깨어있는 동안 → 상대방의 “물통”을 채움
  3. 물통이 가득 차면 → 상대방이 깨어남
  4. 깨어난 친구가 → 이전 친구를 재움

게임 진행 과정

1단계: 시작

트랜지스터A: 😴 (꺼짐)    트랜지스터B: 😀 (켜짐)
커패시터A: [    ]        커패시터B: [████]

게임이 시작될 때를 상상해봅시다. 트랜지스터A는 잠들어 있고, 트랜지스터B는 깨어있습니다. A의 물통은 비어있고, B의 물통은 가득 차 있습니다.

2단계: B가 A의 물통을 채움

트랜지스터A: 😴           트랜지스터B: 😀 (LED 켜짐)
커패시터A: [█   ] ← 천천히 채워짐

깨어있는 B는 열심히 A의 물통을 채우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B에 연결된 LED가 밝게 빛나면서 “나 깨어있어!”라고 신호를 보냅니다.

3단계: A의 물통이 가득 참

트랜지스터A: 😀 ← 갑자기 깨어남!    트랜지스터B: 😴 ← 잠듦
커패시터A: [████]                   커패시터B: [    ] ← 비워짐

시간이 흘러 A의 물통이 점점 채워집니다. 1초, 2초, 3초… 드디어 A의 물통이 가득 찹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A가 갑자기 깨어나면서 B를 잠재우고, 동시에 B의 물통에 있던 물을 모두 빼앗아버립니다.

4단계: 이제 A가 B의 물통을 채움

트랜지스터A: 😀 (LED 켜짐)    트랜지스터B: 😴
커패시터B: [█   ] ← 천천히 채워짐

이제 역할이 바뀌어 A가 깨어있게 되고 A의 LED가 빛나기 시작합니다. A가 B의 빈 물통을 채우기 시작합니다.

5단계: 무한 반복!

다시 1초, 2초, 3초… B의 물통이 가득 차면 B가 깨어나고 A가 잠들게 됩니다. 이 과정이 끝없이 반복되면서 두 LED가 번갈아가며 깜빡이게 되는 것입니다.

핵심 비밀: 십자 연결의 천재성

여기서 가장 중요한 비밀은 바로 연결 방식에 있습니다.

십자 연결 구조

  • 트랜지스터A의 물통이 트랜지스터B의 문지기(베이스)에 연결
  • 트랜지스터B의 물통이 트랜지스터A의 문지기(베이스)에 연결

이 십자 연결 때문에 각자가 서로의 알람시계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통은 언제 비워질까?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물통은 언제 비워질까요?

답: 상대방이 켜지는 순간 강제로 비워집니다!

트랜지스터A가 켜지면 강력한 전류가 흐르면서 트랜지스터B 쪽으로 가게 되고, 이 과정에서 B의 물통(커패시터)에 쌓인 전기를 순식간에 빼앗아가 버립니다.

물리적 비유:

🏠A: [물통 가득] → 😀 "일어났다!"
🏠B: [물통 가득] → 😴 "A가 내 물을 다 가져갔네..."

마치 A가 깨어나면서 “내가 일어났으니 네 물은 내가 가져갈게!”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깜빡임의 속도 조절

이 신기한 깜빡이의 속도는 어떻게 조절할 수 있을까요? 답은 물통의 크기와 수도꼭지의 굵기에 있습니다.

속도 조절 방법:

  • 큰 물통(큰 커패시터) = 오래 걸림 = 천천히 깜빡
  • 작은 물통(작은 커패시터) = 빨리 참 = 빠르게 깜빡
  • 좁은 수도꼭지(큰 저항) = 천천히 채워짐 = 천천히 깜빡
  • 굵은 수도꼭지(작은 저항) = 빠르게 채워짐 = 빠르게 깜빡

마무리: 단순함 속의 깊이

Astable Multivibrator는 겨우 몇 개의 간단한 부품으로 만들어지지만, 그 연결 방식의 천재성으로 인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동작합니다.

이 회로의 놀라운 점들:

  • 프로그래밍 없이도 스스로 시간을 “세어줌”
  • 정확한 주기로 반복
  • 한번 전원을 켜면 계속 작동

이것이 바로 블로그 저자가 “마법 같다”고 표현한 이유입니다. 전자공학의 기초를 모르던 그에게 이 회로는 단순한 부품들이 서로 소통하면서 규칙적으로 깜빡이는 작은 기적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7-8년 전 첫 프로그래밍을 배울 때와 같은 깊은 몰입감과 학습의 기쁨을 다시 경험했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가장 단순한 것에서 가장 아름다운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마이크로컨트롤러나 소프트웨어 없이도, 몇 개의 기본 부품과 영리한 연결 방식만으로 이런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경이롭습니다. Astable Multivibrator가 바로 그런 예가 아닐까요? 전자공학의 아름다움과 단순함 속의 깊이를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