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서사의 유혹

틱톡이 승리했다. 이제 모든 것이 60초다” 라는 제목의 기사. 꽤나 그럴듯한 분석이다. 틱톡이라는 하나의 플랫폼이 어떻게 인간의 주의력을 재편하고, 뉴스에서 교육까지 모든 미디어 형태를 60초짜리 짧은 콘텐츠로 바꿔놓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문제는 이것이 너무나 익숙한 서사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수없이 많은 “X가 세상을 바꿨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구글이 세상을 검색 중심으로 바꿨고, 페이스북이 모든 것을 소셜로 만들었으며, 넷플릭스가 구독 경제 시대를 열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단순함의 매력

이런 영웅 서사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명확하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현실을 하나의 명쾌한 원인으로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세상이 왜 이렇게 빨라졌는지, 왜 우리가 집중하기 어려워졌는지, 왜 모든 것이 짧아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틱톡이라는 하나의 답으로 해결해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틱톡이 성공한 배경에는 스마트폰의 보급, 모바일 인터넷의 발달, 기존 소셜미디어의 포화, 젊은 세대의 문화적 변화, 그리고 무엇보다 코로나19라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틱톡은 이런 조건들이 만들어낸 기회의 창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일 뿐이다.

실제로 틱톡과 비슷한 시도를 한 앱들은 수없이 많았다. 바인이 있었고, 뮤지컬리가 있었으며, 인스타그램 릴스도 있었다. 대부분은 실패했거나 주목받지 못했다. 틱톡의 성공을 순전히 그들의 혁신과 통찰력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생존자 편향의 전형이다.

사후 합리화의 함정

우리는 성공한 결과를 보고 나서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내는 데 능숙하다. 틱톡이 성공하고 나니까 “아, 그들이 인간의 주의력 경제를 완벽하게 이해했구나”라고 말한다. 하지만 만약 틱톡이 실패했다면 어떨까? 아마도 “짧은 콘텐츠의 한계”, “깊이 없는 소통의 문제점”, “알고리즘의 부작용” 같은 이야기들이 나왔을 것이다.

이는 모든 성공 스토리에 적용되는 패턴이다. 구글도 처음에는 수많은 검색엔진 중 하나였고, 페이스북도 마이스페이스나 프렌드스터 같은 경쟁자들과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그들의 성공을 오직 뛰어난 비전과 혁신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타이밍, 운, 자본력, 네트워크 효과 같은 다른 중요한 요소들을 간과하는 일이다.

영웅을 원하는 마음

그럼에도 우리가 이런 영웅 서사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명확한 설명을 원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일 것이다. “복잡한 시대적 맥락과 우연의 결합”보다는 “천재적인 기업가의 혁신”이 훨씬 이해하기 쉽고 흥미롭다.

또한 이런 서사는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한 사람이나 한 회사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은, 나 역시 그런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그래서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이런 영웅 서사가 특히 인기를 끄는 것인지도 모른다.

경계해야 할 이유

하지만 이런 서사에 너무 몰입하면 위험하다. 첫째, 현실을 잘못 이해하게 만든다. 복잡한 사회 현상을 하나의 원인으로 환원시키면서 다른 중요한 요소들을 놓치게 된다. 둘째, 과도한 기대를 만들어낸다. 하나의 혁신이나 아이디어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런 서사는 기존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이나 기업의 성공 스토리로 포장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틱톡의 성공을 논하면서 정작 우리가 왜 60초짜리 콘텐츠에 중독되어야 하는지, 이런 변화가 정말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뒤로 밀려난다.

균형 잡힌 시선

물론 특정 기업이나 개인의 혁신을 완전히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뛰어난 아이디어와 실행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영웅 서사보다 훨씬 복잡하고 우연적이며 예측 불가능하다. 그래서 더 흥미롭기도 하고, 때로는 더 절망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복잡성을 인정할 때야 비로소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고, 진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다음에 “X가 세상을 바꿨다”는 기사를 볼 때는 잠시 멈춰서 생각해보자. 정말 그 X 하나가 모든 것을 바꾼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이야기로 만들고 싶어하는 욕망이 만들어낸 환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