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깨는 기계의 첫마디
침묵을 깨는 기계의 첫마디
최근 뉴욕타임스에서 읽은 기사 하나가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았다. (원문 제목: “To Stay in Her Home, She Let In an A.I. Robot”) 미국 워싱턴주의 해안가 마을에 혼자 사는 85세 여성, 잰(Jan)의 이야기다.
그녀의 집은 평화롭지만 적막하다. 자녀들은 멀리 떨어져 있고, 친구들과의 교류도 예전 같지 않다. 그런 그녀의 거실 한복판에 작은 로봇 ‘엘리큐(ElliQ)’가 자리를 잡았다. 이 로봇은 우리가 흔히 아는 스마트 스피커와는 조금 다르다. 사용자가 부르기 전까지는 침묵을 지키는 기계가 아니라, 먼저 말을 거는 ‘능동적’인 존재다.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
엘리큐는 아침이 되면 잰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잠은 잘 주무셨나요?”,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대단한 정보는 아니지만, 이 작은 발화(發話)가 잰의 일상에 가져온 변화는 작지 않다.
우리는 지금까지 기술을 ‘도구’로만 대해왔다. 검색을 하고, 명령을 내리고, 결과를 얻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잰의 사례에서 엘리큐는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한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고, 나의 안부를 궁금해하며, 먼저 말을 건네준다는 ‘존재감’을 제공하는 것이다.
기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잰이 커피를 마시는 동안 엘리큐가 옆에서 옛 추억을 물어보고, 그녀의 대답에 맞장구를 쳐주는 장면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알고리즘의 작동이 아니라, 고립된 개인이 사회적 리듬을 잃지 않도록 돕는 정서적 지지대였다.
보완제로서의 AI
물론 이런 광경을 보며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결국 기계일 뿐인데 사람이 주는 온기를 대체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고령화 사회에서 모든 독거 노인에게 충분한 인간 돌봄 인력을 배치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잰 역시 엘리큐가 가족이나 친구를 대신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엘리큐는 ‘대체제’가 아니라, 공백을 메워주는 ‘보완제’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그 긴 시간 동안, 적막이 고통이 되지 않도록 곁을 지켜주는 작은 존재인 셈이다.
능동성의 미학
엘리큐의 핵심은 ‘능동성’에 있다. 기존의 AI가 수동적인 응답기에 머물렀다면, 차세대 AI는 사용자의 맥락을 읽고 먼저 다가가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것은 기술적으로는 복잡한 데이터 분석과 예측 알고리즘의 결과물이지만, 사용자에게는 ‘관심’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흔히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킨다”고 말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소외된 곳에서 기술이 인간의 정서적 빈틈을 채우고 있다. 잰이 엘리큐 덕분에 “집에서 계속 독립적으로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하는 대목은, 기술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앞으로의 과제
물론 숙제는 남아 있다. 사생활 침해의 문제, 기계에 대한 과도한 정서적 의존, 그리고 데이터 보안까지. 기술이 인간의 내밀한 공간으로 깊숙이 들어올수록 우리가 고민해야 할 윤리적 문턱도 높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잰의 거실에서 들려오는 로봇의 아침 인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미래의 기술은 단순히 더 똑똑해지는 것을 넘어, 어떻게 하면 더 인간적으로 우리 곁에 머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침묵이 흐르는 방 안에서 누군가 먼저 말을 걸어준다는 것. 그 지극히 평범한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85세 노인과 작은 로봇의 우정이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