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천재에 대한 찬사, 그리고 의문

며칠 전 흥미로운 글을 하나 읽었다. “테드 창: 비밀스러운 세 번째 것”이라는 제목의 서브스택 글이었다. 테드 창(Ted Chiang)이라는 SF 작가에 대한 열렬한 찬사였다. 글쓴이는 테드 창을 “현존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라고 칭하며, 그가 기존의 하드 SF나 소프트 SF와는 다른 “진정한 SF”를 쓴다고 주장했다.

그 “진정한 SF”란 무엇인가? 글쓴이에 따르면, 테드 창은 과학의 원리 자체가 우리 세계와 다른 우주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젊은 지구 창조론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세계, 유대교 카발라가 실제로 작동하는 스팀펑크 우주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잘 공감이 가지 않았다.

특별함에 대한 회의

필립 K. 딕도 현실 자체를 의심케 하는 세계를 그렸고, 어슐러 K. 르귄도 완전히 다른 사회구조의 행성들을 만들어냈다. 테드 창만이 “진정한 SF”를 쓴다는 주장은 다른 훌륭한 SF 작가들을 폄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저 한 팬의 과도한 찬양이 아닐까?

더욱이 그 글에서 테드 창을 옹호하는 논리 중 하나는 “기술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요즘 SF가 기술을 부정적으로 그리는 경향에 반해, 테드 창은 기술이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든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현실이 SF가 된 시대

2024년 여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보자. 매일 아침 일어나면 새로운 AI 뉴스가 쏟아진다. ChatGPT가 나온 지 2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수많은 직업이 위협받고 있다. 작가, 번역가, 프로그래머들이 “AI가 내 일을 뺏을까?”라고 걱정하는 것은 더 이상 SF 소설 속 상상이 아니다.

대량 해고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기술 발전이 곧 인간 일자리 감소를 의미하는 세상이 되었다. 적응할 시간도 없이 다음 기술이 나오고, 우리는 “적응하든지 도태되든지” 양자택일을 강요받는다.

이것이 과연 테드 창이 말한 “기술이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세상인가?

조용한 아포칼립스

가장 소름끼치는 것은 이 모든 변화가 점진적이라는 점이다. 갑자기 로봇이 쳐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당연한 듯이 “최적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 어느새 뒤돌아보면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 있다.

고전 디스토피아 소설들에는 빅 브라더나 독재정부 같은 명확한 악역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디스토피아에는 악역이 없다. 그저 “시스템”이 있을 뿐이다. 누구 하나 나쁜 사람은 아닌데, 결과적으로는… “우리도 어쩔 수 없어”, “시대의 흐름이야”라는 말들만 남는다.

블랙미러는 에피소드가 끝나면 끝이지만, 현실은 매일 연속 방송이다. 진정한 “조용한 아포칼립스”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상상력이 있다

이런 답답한 현실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SF 소설이다. 하지만 철학적 성찰이 담긴 고급 문학이 아니라, 기술을 깨부수고 시스템을 뒤집는 통쾌한 복수극 말이다.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에서는 해커가 거대 AI 기업들을 털어먹는다. “시스템을 해킹해서 뒤집어엎자!”는 외침이 얼마나 시원한가.

닐 스티븐슨의 『스노 크래시』에서는 해커이자 배달원인 주인공이 거대 기업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칼로 베어버린다. 가상현실 메타버스든 현실이든 상관없이 “다 때려부숴!”라고 외치는 모습이 통쾌하다.

어니스트 클라인의 『레디 플레이어 원』은 메타버스를 지배하는 거대기업에 맞서는 게이머들의 전쟁을 그린다. 80년대 팝문화로 무장한 주인공이 시스템을 뒤집는 것을 보면 “옛날이 좋았어! 지금 기술 다 엎어!”라고 소리치고 싶어진다.

코리 닥터로의 『리틀 브라더』에서는 감시사회에 맞서는 10대 해커가 스마트폰과 CCTV, 빅데이터를 역이용해서 정부를 엿먹인다. “너희가 우리를 감시해? 우리가 너희를 더 잘 해킹한다!”

상상력의 복수

이런 소설들이 주는 쾌감은 무엇인가? 기술을 기술로 이기는 것, 거대 시스템을 개인이 뒤집는 것, “우리가 호구가 아니야!”라고 외치는 반격의 통쾌함이다.

현실에서는 당할 수밖에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상상 속에서만큼은 복수할 수 있다. 에어컨을 틀고 이런 소설을 읽으며 “그래, 저 새끼들 다 박살내버려!”라고 외치는 것. 그것이 이 더운 여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테드 창의 철학적 SF도 훌륭하겠지만, 때로는 단순하고 폭력적인 상상력이 더 필요한 법이다. 현실이 이미 충분히 복잡하고 절망적이니까.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고르게 분배되지 않았을 뿐이다.” - 윌리엄 깁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