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AI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2,300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 인간의 행복과 덕에 대해 깊이 사유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께 현대인들의 고민을 들어보았습니다. 그의 지혜로운 답변이 불안한 우리에게 어떤 통찰을 줄 수 있을지 함께 들어보시죠.


1. AI가 나보다 똑똑해지는 세상에서, 나는 여전히 특별한 존재일까요?

젊은이여, 그대가 ‘특별함’을 지적 능력으로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나는 평생에 걸쳐 인간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탐구해왔는데, 그것은 결코 누가 더 빨리 계산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이 특별한 이유는 에우다이모니아, 즉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어떻게 살아야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지 않은가? AI가 아무리 똑똑해도 이런 질문을 던질 수는 없다. AI는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뿐이다.

그대는 용기를 발휘할 수도, 친구를 위해 희생할 수도, 아름다운 것에 감동할 수도 있다. 이런 덕들을 실천하며 사는 기쁨을 AI가 알 수 있겠는가? 가장 뛰어난 계산기라 해도 여전히 계산기일 뿐이다. 그러나 그대는 그 계산기를 사용해서 더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다.


2. AI에게 의존하게 되면서 잃게 되는 것과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 이는 모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인간이 직면하는 영원한 딜레마구나. 내가 살던 시대에도 젊은이들이 글쓰기를 배우면서 기억력이 약해진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대는 분명히 무언가를 잃게 될 것이다.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는 기회가 줄어들면, 실용적 지혜라고 내가 부르는 프로네시스가 약해질 수 있다. 마치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이 약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함께 문제를 해결하며 형성되는 진정한 우정의 기회도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얻는 것도 크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에서 해방되면, 그대는 더 중요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지 않겠는가? 더 많은 사람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예술을 감상하고, 철학을 탐구할 시간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의 의미다.

핵심은 중용이다. AI에 모든 것을 맡기지도, 완전히 거부하지도 말고, 지혜롭게 활용하는 것. 그것이 현명한 사람의 태도다.


3. AI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걸까요?

당연하다, 매우 당연하다! 불안해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

생각해보라. 인간은 본래 사회적 동물이며 합리적 동물이다. 우리의 정체성과 살아가는 방식에 큰 변화가 일어날 때 불안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는 마치 큰 폭풍이 몰려올 때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는 것과 같다.

그대의 불안은 여러 층위에서 일어나고 있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 “무엇이 옳고 그른가?”라는 윤리적 질문, “내가 이 공동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라는 사회적 질문들이 모두 흔들리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안 자체가 아니라 그 불안을 어떻게 다루느냐이다. 현명한 사람은 불안을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불안을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한다. 불안은 종종 우리가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할 때 생긴다. 그렇다면 그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이 지혜로운 첫걸음이다.


4. 변화가 빠른 세상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아, 이것은 내가 평생 추구해온 아타락시아, 즉 마음의 평정과 관련된 질문이구나.

변화가 빠르다고 해서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강물은 빠르게 흐르지만 강바닥의 바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 않은가? 그대에게도 그런 변하지 않는 바위 같은 것들이 있다.

무엇보다 덕의 실천에 집중하라. 정의롭게 살고, 용기를 내고, 절제하며, 지혜롭게 판단하는 것의 가치는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AI 시대에도 거짓말하지 않고, 약한 사람을 도우며,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것은 여전히 아름다운 일이다.

또한 본질과 우연을 구분하는 능력을 기르라. 기술의 변화는 대부분 우연적인 것들이다. 하지만 사랑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근본적 욕구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관조의 시간을 가져라. 바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가끔은 멈춰 서서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것이 내가 원하는 방향인가?”라고 자문해보는 것이다. 이런 성찰의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평화의 원천이다.


5. AI와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날 때, 사람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이 질문을 받으니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우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나는 우정을 세 종류로 나누었다. 첫 번째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맺는 관계, 두 번째는 함께 있으면 즐겁기 때문에 맺는 관계, 그리고 세 번째는 서로의 인격과 덕을 존경해서 맺는 관계다.

AI와의 관계는 분명 첫 번째와 두 번째 역할을 상당 부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AI는 유용한 정보를 주고, 때로는 재미있는 대화 상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세 번째 차원, 즉 진정한 우정은 절대 대체할 수 없다.

진정한 우정은 서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관계다. 친구가 “너 요즘 너무 게을러졌다”고 충고할 때, 그것은 AI가 할 수 없는 종류의 사랑이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성장하고, 서로의 아픔을 나누는 것 말이다.

오히려 AI가 일상적이고 표면적인 소통을 담당하게 되면, 인간관계는 더욱 깊고 의미 있는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정보 교환이 아닌, 진정한 마음의 교류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6. 기계가 많은 일을 대신해주면, 인간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아하, 이것이야말로 내가 평생 고민했던 인간의 목적, 즉 텔로스에 관한 질문이구나!

인간의 고유한 기능은 이성적 활동이라고 나는 늘 말해왔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한 계산이나 분석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이성적 활동이란 덕을 실현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기계가 생산과 계산을 담당한다면, 그대는 비로소 진정으로 인간다운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용기를 실천하고, 정의를 추구하고,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일 말이다.

예술가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작품을 만들 수도 있고, 철학자가 되어 삶의 의미를 탐구할 수도 있다. 훌륭한 부모가 되어 다음 세대를 현명하게 기를 수도 있고, 친구가 되어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고 격려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조적 삶을 사는 것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것에서 벗어나 가끔은 멈춰 서서 “삶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기계가 우리를 노동에서 해방시킨다면, 그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물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문제는 그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이다.


7. 완벽한 AI가 있는 세상에서, 인간의 실수와 감정은 왜 소중할까요?

그대가 말하는 ‘완벽함’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나에게 완전성이란 기계적 정확성이 아니다. 진정한 완전성은 씨앗이 나무로 자라나는 것처럼 잠재력이 실현되는 것이다.

인간의 실수는 약점이 아니라 가능성의 증거다. 실수를 한다는 것은 아직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고,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완벽한 기계의 ‘옳은’ 선택은 단순히 프로그래밍된 결과일 뿐이다. 하지만 실수할 수 있는 인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옳은 것을 선택할 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도덕적 가치를 갖는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감정을 이성의 방해물로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정당한 분노는 정의감의 표현이고, 적절한 두려움은 신중함의 발현이며, 따뜻한 연민은 인간애의 증거다. 감정은 실용적 지혜의 중요한 구성요소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의 실수와 감정을 이해하기 때문에 우리는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고 서로를 위로할 수 있다. 완벽한 존재들 사이에는 진정한 우정이 있을 수 없다. 서로의 약함을 알기에 서로를 도울 수 있고, 그래서 더욱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불완전함’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소중한 특징이다.


8. AI 시대의 불안감을 성장의 기회로 바꿀 수 있을까요?

물론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말하는 실용적 지혜의 핵심이다.

먼저 그대의 불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라. 이 불안이 과연 합리적인 것인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정체성의 혼란인가, 안전에 대한 걱정인가, 아니면 통제력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가? 불안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그 다음에는 중용의 원리를 적용해보라. 극단적으로 두려워하지도, 완전히 무관심하지도 말고, 건전한 경계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변화에 대해 무조건 저항하지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도 말고, 용기와 신중함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 불안감을 덕의 관점에서 재해석해보라. 불안은 신중함이 될 수 있다. 미래를 준비하고 현명한 선택을 하려는 지혜의 표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두려움은 용기로 전환될 수 있다. 어려움에 맞서 나아갈 의지를 기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행동에 옮겨보라. AI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변하지 않는 소중한 가치들을 더 깊이 실천하며,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지혜를 나누는 것이다.

불안은 변화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를 성장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면, 그대는 더욱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9. 통제할 수 없는 변화 앞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이는 운명과 자유의지에 대한 오래된 질문이구나.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세레니티, 즉 평정심과 실용적 지혜의 조화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다. 그대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 - 그대의 반응, 선택, 노력, 태도 - 이런 것들에 집중하라. AI가 어떻게 발전할지,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는 그대 혼자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변화 자체를 올바르게 이해하라. 모든 변화가 나쁜 것은 아니다. 자연도 계절에 따라 변하지 않는가? 변화는 존재의 본질적 특징이다. 완전히 정적인 상태라는 것은 사실상 죽음과 다름없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그저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서도 그대의 가치를 실현할 방법을 찾고, 덕을 실천할 새로운 방식을 개발하는 것이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변화도 함께하면 가능하다. 공동체의 집단 지혜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고, 서로 격려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인 관점을 잃지 말라. 당장의 혼란에 매몰되지 말고, 이 모든 변화가 궁극적으로 인간의 번영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것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10. AI와 함께 사는 시대에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요?

아, 이것이야말로 내 철학의 핵심인 에우다이모니아에 대한 질문이구나! 이 질문을 받으니 마치 오랜 친구와 대화하는 기분이다.

행복한 삶이란 순간적인 즐거움이나 쾌락이 아니다. 그것은 덕스러운 삶의 전체적인 완성이다. AI 시대라고 해서 이 근본적인 진리가 바뀌지는 않는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여전히 덕을 실현하며 사는 것이 핵심이다. AI를 현명하게 활용하되 스스로 사유하는 능력은 잃지 않는 지적 덕, 기술의 편리함 속에서도 정직하고 용기 있고 절제 있게 사는 윤리적 덕, 그리고 언제 AI에 의존하고 언제 스스로 판단해야 할지 아는 실용적 지혜 말이다.

관계적 차원에서는 더욱 중요해진다. AI가 제공할 수 없는 깊이와 상호성을 가진 진정한 우정, 서로를 돌보고 지지하는 따뜻한 가족과 공동체, 그리고 자신의 지혜와 경험을 다음 세대와 나누는 멘토링의 기쁨이 있다.

창조적 차원에서는 AI가 할 수 없는 그대만의 독특한 재능을 발휘하고,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며, 예술과 자연과 진리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창조하는 일이다.

내적 차원에서는 자기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존재 자체에 대한 감사와 경이로움을 잃지 않는 것이다.

AI 시대의 행복은 기술과의 조화 속에서 찾아진다. AI를 두려워하거나 맹신하지 않고 현명하게 활용하면서, 기계가 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가치들을 더욱 깊이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AI가 가져다준 여유와 효율성을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다.

결국 AI 시대의 행복한 삶이란 기술의 도구적 가치를 누리면서도 인간 본연의 목적과 가치를 잃지 않는 삶이다. AI가 우리의 수단을 풍부하게 해준다면, 우리는 목적을 더욱 선명하게 하고 더 깊이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며

젊은 친구여, 불안해하지 마라. 모든 위대한 변화는 처음엔 두렵게 느껴지지만, 지혜롭게 대응한다면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기회가 된다.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덕스럽게 살고, 진실을 추구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길이다.

기술은 우리의 도구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여 더 나은 인간, 더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느냐이다. 그대에게는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것이야말로 그대가 가진 가장 특별한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