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 소크라테스

인공지능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여전히 특별한 존재일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 앞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만약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살아 있다면, 이 시대의 고민에 대해 어떤 통찰을 줄 수 있을까? 혼란한 시대 소크라테스를 소환해 10가지 질문을 던진다.


1. “AI가 나보다 똑똑해지는 세상에서, 나는 여전히 특별한 존재일까요?”

젊은이여, 먼저 묻겠다. 그대는 ‘똑똑하다’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AI가 계산을 빨리 하고 많은 정보를 기억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지혜인가?

나는 평생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말해왔다. 이 무지의 자각이야말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함이 아닐까? AI는 의심할 수 있는가? 자신의 한계를 깨달을 수 있는가?

그대가 특별한 이유는 지식의 양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며 고민하고, 사랑하고, 괴로워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능력에 있다. 이것이 바로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의 참뜻이다.


2. “AI에게 의존하게 되면서 잃게 되는 것과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좋은 질문이다. 하지만 먼저 ‘의존’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우리는 이미 수많은 것에 의존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언어에, 법에, 타인에게 말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의존인가이다. 만약 AI에 의존하여 사고를 멈춘다면, 우리는 영혼의 움직임을 잃게 될 것이다. 하지만 AI를 도구로 삼아 더 깊이 사유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높은 차원의 지혜에 다가갈 수도 있다.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재는 저울보다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기술은 중립적이다.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는 우리의 도덕적 선택에 달려 있다.


3. “AI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걸까요?”

불안은 무지에서 온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AI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불안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불안이 항상 나쁜 것인가? 불안은 우리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게 만들고, 더 나은 길을 찾게 만들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불안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불안이 무엇에서 비롯되는지 탐구하는 것이다. 혹시 그대의 불안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인가? 아니면 통제를 잃을 것에 대한 걱정인가? 원인을 알면 대처할 수 있다.


4. “변화가 빠른 세상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듯 “모든 것은 흐른다.” 변화는 삶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변화를 적으로 여기지 말고,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진리를 향한 갈망, 선을 행하려는 마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영혼 - 이런 것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마음의 평화는 외부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올바르게 살고 있다는 확신, 매일 조금씩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는 자각에서 온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이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5. “AI와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날 때, 사람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내가 평생 추구한 것은 진정한 대화였다. 하지만 진정한 대화란 단순히 정보를 주고받는 것인가?

사람과의 대화에는 예측 불가능함이 있다. 서로의 영혼이 부딪히며 새로운 깨달음이 생긴다. 때로는 침묵마저 의미가 있다. 이런 것을 AI가 줄 수 있을까?

만약 사람들이 AI와의 편안한 대화를 선호하여 어려운 인간관계를 피한다면, 우리는 영혼을 단련할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갈등과 화해, 오해와 이해의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6. “기계가 많은 일을 대신해주면, 인간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아테네 시민들에게 내가 늘 했던 질문이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일이 없어진다면, 우리에게는 더 소중한 일을 할 시간이 생기는 것 아닌가? 자신을 알아가는 일, 타인을 이해하는 일, 정의와 선에 대해 깊이 사유하는 일 말이다.

노예제 사회에서 자유시민들이 그랬듯이, 우리는 물질적 필요에서 벗어나 영혼의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이는 우리가 현명한 선택을 한다면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게으름과 방탕에 빠질 수도 있다.


7. “완벽한 AI가 있는 세상에서, 인간의 실수와 감정은 왜 소중할까요?”

완벽함이 정말 바람직한 것일까? 나는 완벽한 지혜를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신들만이 완벽하다면, 완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오는 배움과 성장이야말로 인간다움이 아닌가?

실수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다른 이의 실수를 용서하게 만든다. 감정은 우리를 살아있게 만든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분노를 통해 우리는 삶의 참맛을 안다.

완벽한 AI가 모든 답을 안다면, 탐구의 즐거움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의심하고, 틀리고, 다시 시작하는 이 과정이야말로 철학하는 삶의 핵심이다.


8. “AI 시대의 불안감을 성장의 기회로 바꿀 수 있을까요?”

모든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불안감은 우리가 안주하던 것들을 다시 검토하게 만든다. “내가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AI 시대는 우리로 하여금 인간됨의 본질에 대해 더 깊이 사유하게 만든다. 이보다 더 철학적인 기회가 또 있을까?

도전받을 때 우리는 강해진다. 편안함 속에서는 성장할 이유가 없다. AI가 가져다주는 도전을 회피하지 말고,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로 삼아보자.


9. “통제할 수 없는 변화 앞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AI의 발전 속도를 우리가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두려워하며 움츠러들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에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것인가? 중요한 것은 외부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자세다.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 - 진실을 추구하는 마음, 선을 행하려는 의지,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 - 이런 것들을 굳게 붙잡고 있다면, 어떤 변화도 두렵지 않다.


10. “AI와 함께 사는 시대에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요?”

행복한 삶이란 덕스러운 삶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덕이란 시대가 바뀌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용기, 절제, 정의, 지혜 - 이런 덕목들을 AI 시대에도 추구할 수 있다. 오히려 새로운 상황에서 이런 덕목들을 어떻게 실천할지 고민하는 것이 더욱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기술이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행복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마치며

젊은이여, 내가 한 말들이 정답은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 함께 탐구해야 할 질문들이다. 중요한 것은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AI 시대에도 이 철학하는 삶의 자세만은 잃지 말기를 바란다.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 - 소크라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