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l과 현대 프로메테우스들의 딜레마
curl과 현대 프로메테우스들의 딜레마
어떤 이름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품고 있다. curl이 그런 이름이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네 글자의 명령어이지만, 그 안에는 28년의 시간과 200억 개의 설치본,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이 들어있다.
보이지 않는 거인
우리는 매일 curl을 만난다. 스마트폰을 켤 때,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릴 때, 우버를 부를 때.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마치 공기처럼, 너무나 당연해서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curl이 바로 그런 존재다.
1996년, 다니엘 스텐버그라는 스웨덴의 젊은 프로그래머가 160줄의 코드로 시작한 작은 프로젝트. 그는 단순히 인터넷에서 파일을 다운로드하는 도구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c’는 ‘see’를 의미하고, URL을 ‘본다’는 뜻에서 curl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얼마나 순진하고 아름다운 시작인가.
그런데 28년이 지난 지금, 그 작은 도구는 전 세계 200억 개의 기기에서 돌아가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인간보다 많은 수의 설치본을 가진 소프트웨어가 된 것이다.
프로메테우스의 선물, 그리고 저주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주었다. 그 대가로 그는 바위에 묶여 독수리가 간을 쪼아 먹는 영원한 고통을 받아야 했다. 매일 밤 간은 재생되고, 매일 독수리는 다시 와서 그것을 파먹었다.
스텐버그와 같은 오픈소스 개발자들을 보면 현대의 프로메테우스가 떠오른다. 그들은 인류에게 디지털 시대의 ‘불’을 가져다주었다. 무료로, 조건 없이, 그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순수한 의도로.
하지만 그 선물의 대가는 무엇인가? 스텐버그는 이제 집에서 curl에 대한 풀타임 작업을 한다고 한다. 28년 동안 그의 삶은 점점 더 curl과 분리할 수 없게 되었다. 취미로 시작한 것이 정체성이 되고, 개인 프로젝트가 글로벌 인프라가 되었다.
Apple Support조차 curl 문제를 스텐버그 개인에게 떠넘기는 현실. 수조 달러 기업들이 개인 개발자에게 “니가 만든 거 니가 고쳐”라고 말하는 셈이다. 이 얼마나 기괴한 상황인가.
아름다운 감옥
성공은 때로 가장 아름다운 감옥을 만든다. 스텐버그는 2017년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폴헴상 금메달을 받았다. 화려한 만찬에서, 찬사 속에서, 그는 분명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알았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는 것을.
200억 개의 설치본. 이 숫자는 축복인가, 저주인가? curl에는 1,240명의 기여자가 있었지만 65% 이상이 한 번만 기여하고 떠났다고 한다. 사람들은 와서 도움을 주다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스텐버그는 떠날 수 없다. 그가 떠나면 무너질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이슈를 가져오거나 패치를 가져오는 사람들에게 집중한다. 어딘가에 있는 수십억 사용자들이 아니라.” 현명한 정신적 방어기제다. 200억이라는 숫자를 직시하며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시지프스의 바위
또 다른 그리스 신화의 인물, 시지프스를 떠올린다. 그는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굴려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았다. 바위가 정상에 도달하면 다시 굴러떨어지고, 그는 다시 밑에서부터 밀어 올려야 했다. 영원히.
오픈소스 개발도 그렇다. 버그를 수정하면 새로운 버그가 나타난다. 새로운 프로토콜이 나오면 지원해야 하고, 보안 취약점이 발견되면 즉시 패치해야 한다. HTTP/3, QUIC, 사이버 복원력법, AI로 인한 새로운 요구사항들… curl 프로젝트는 현재 120개 이상의 알려진 버그 목록을 관리하고 있다. 2년 전 77개에서 늘어난 숫자다.
끝이 없다. 완성이라는 것도 없다. 스텐버그의 바위는 매일 산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그는 매일 다시 밀어 올린다.
코끼리와 개미
The New Stack의 기사는 현재 상황을 이렇게 비유했다. “세상의 IT 인프라는 해변가 공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코끼리 같고, 그 공을 개미들이 떠받치고 있다.”
8.8조 달러 규모의 오픈소스 생태계. 하지만 그 거대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스텐버그 같은 개별 개발자들이다. C-suite 임원 중 62%만이 오픈소스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조사 결과가 이 현실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무료로 주어지는 것들의 진짜 비용을 잘 모른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다. 편리함 뒤에 숨은 누군가의 희생을, 무료 뒤에 감춰진 누군가의 헌신을 외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스텐버그는 계속한다. 왜일까? 단순한 공명심일까? 아니면 사회적 압박 때문일까?
아마 그 모든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무언가도.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느끼는 책임감, 장인이 자신의 기술에 대해 갖는 자부심,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원초적 욕망.
“재미있는 한 왜 작업하지 않겠는가?”라고 그가 말했다고 한다. 28년 동안 같은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여전히 재미를 느낀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장인정신이 아닐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curl을 사용하는 모든 기업, 모든 개발자, 모든 사용자들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우리는 프로메테우스들의 선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그들이 치르는 대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은 있다. Sovereign Tech Fund 같은 정부 차원의 지원, 기업들의 오픈소스 펀딩,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의 확산.
스텐버그는 여전히 자신의 바위를 굴리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 바위를 함께 밀어줄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희망적이지 않을까.
curl을 실행할 때마다, 그 네 글자 뒤에 숨은 28년의 시간과 한 사람의 인생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가능하다면, 작은 기여라도 해보자. 코드가 아니어도 좋다. 후원이어도, 감사 인사라도 좋다.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들이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불을 나누어줄 수 있도록.
“가려운 곳이 있으면 긁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한 계속 작업한다.” - 다니엘 스텐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