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위키피디아에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Wikipedia Signpost 2025년 8월 9일자 허위정보 보고서에 따르면, 데이비드 우다드(David Woodard)라는 비교적 무명의 미국 작곡가에 대한 위키피디아 문서가 335개 언어로 번역되어 역사상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위키피디아 문서가 되었다고 한다. 이는 미국이나 위키피디아 자체보다도 더 많은 언어로 번역된 것이다.

2024년 후반부터 사람들은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위키피디아 문서가 더 이상 미국 같은 주요 국가나 위키피디아 자체가 아니라,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문서라는 것이었다. 조사 결과 이 문서들 중 상당수가 ‘Swmmng’이라는 단일 사용자에 의해 생성되었음이 밝혀졌다.

조작의 전말

보고서에 따르면 이 “조작”은 2017년부터 시작되었다. Swmmng 사용자는 기계번역을 이용해 단기간에 수많은 언어로 데이비드 우다드 문서를 생성했다. 처음 발행될 때는 내용 없이 파란 사파이어 사진만 있었고, 1분 후에 기계번역된 내용이 추가되었다. 이런 작업은 2019년 3월까지 지속되다가, 다른 사용자 PiRSquared17이 Meta에서 이에 대해 문의한 후 갑자기 중단되었다.

위키피디아 커뮤니티는 이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였다. 2025년 6월 30일 전체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관련 계정들의 전역 차단과 검증할 수 없는 모든 정보의 삭제를 권고했다. 각 언어별 위키피디아 프로젝트들에 연락해 이 사실을 알리고 대응을 촉구했다.

해커 뉴스의 반응

이 소식이 해커 뉴스에 올라오자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완전히 당황스럽다. 우다드나 그의 팬이 그의 이름을 퍼뜨리기 위한 어떤 종류의 ‘아스트로터핑’ 노력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댓글이 달렸다. 다른 사용자는 기술적 분석을 통해 “명백한 스팸의 영리한 형태”라고 지적했다.

300개 이상의 서로 다른 위키피디아 프로젝트가 각각 고유한 편집자, 관리자, 정책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문제를 추적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문제도 지적되었다. 한 사용자는 “이런 사소해 보이는 단일 문서 스팸 문제를 해결하려면 300번 이상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위키피디아 시스템의 한계를 비판했다.

하지만 정말 이게 문제일까?

이 기사와 댓글들을 읽으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무엇이 그렇게 나쁜 일이었을까? 단지 한 예술가를 전 세계 사람들이 알 수 있게 번역해준 것이 왜 “조작”이고 “스팸”이 되는 걸까?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데이비드 우다드에 대한 거짓 정보를 퍼뜨린 것도 아니고, 다른 문서를 밀어낸 것도 아니다. 단지 상대적으로 무명인 예술가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뿐이다. 기계번역을 썼다고 해서 내용이 틀린 것도 아니고, 요즘 기계번역 품질도 꽤 좋은 편 아닌가?

더 근본적으로는 위키피디아의 “주목성” 기준 자체가 의문스럽다. 결국 이 기준은 “이미 주류 미디어에서 유명해진 것만 위키피디아에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위키피디아는 새로운 지식을 발굴하고 확산시키는 곳이 아니라, 기존에 유명한 것들만 정리해놓는 도서관에 불과한 것 아닌가?

“자유로운 지식”의 모순

위키피디아는 스스로를 “세계 모든 지식의 총합”이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데이비드 우다드 사건을 보면 실제로는 “세계 모든 유명 지식의 총합”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작은 예술가, 지역 인물, 비서구권 인물들은 아무리 의미 있는 작업을 해도 “주목성 부족”이라는 이유로 배제된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결국 이미 유명한 사람만 더 유명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주류 미디어의 관심을 받지 못한 수많은 재능 있는 사람들은 영원히 기회를 얻지 못한다. 위키피디아가 표방하는 “지식의 민주화”와는 정반대 방향이다.

데이비드 우다드 같은 “조작”이 없었다면, 전 세계 사람들이 그를 알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300개 언어로 번역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인데, 그것을 문제로 보는 시각이 오히려 이상하다.

위키피디아 편집의 현실

사실 이 문제는 위키피디아 편집 경험과도 연결된다. 많은 사람들이 위키피디아 편집을 두려워한다. 복잡한 규칙들, 기존 편집자들의 텃세, 실수하면 바로 되돌리는 분위기 때문이다. “누구나 편집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진입장벽이 높다.

한국에서 위키피디아가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수 있다. 네이버 지식인이나 블로그, 나무위키 같은 곳이 더 인기 있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접근하기 쉽기 때문이다. 위키피디아는 너무 “학술적”이고 “엄격한” 느낌이 든다.

전문가나 숙련된 편집자들만의 폐쇄적 커뮤니티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일반인들은 그저 “읽기만 하는” 수동적 사용자로 전락했다. 이게 정말 “자유로운 지식”을 추구하는 모습일까?

정보 민주화에 대한 근본적 질문

데이비드 우다드 사건을 보면서 더 큰 의문이 든다. 위키피디아가 정말 “자유로운 지식”을 추구하는 곳인가, 아니면 기존 권력구조를 그대로 반영하는 곳인가?

현재의 위키피디아는 주류 미디어, 학계, 서구 중심의 편향을 그대로 담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는 기준도 결국 기존 권위를 가진 매체들의 검증에 의존한다. 새로운 관점이나 다양한 목소리는 배제되기 쉽다.

정보의 민주화란 기존의 게이트키퍼를 우회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데이비드 우다드 사건은 오히려 환영받아야 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무명 예술가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을 “조작”이라고 비난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진정한 지식의 자유를 위해

위키피디아가 진짜 “자유로운 지식”을 원한다면 변화가 필요하다. 주목성 기준을 재검토하고, 편집 진입장벽을 낮추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서구 중심, 주류 미디어 중심의 편향에서 벗어나 진정한 글로벌 지식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데이비드 우다드 사건에서 진짜 문제는 그의 문서가 300개 언어로 번역된 것이 아니라, 위키피디아가 이런 시도를 “조작”으로 규정하고 차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열정을 가지고 한 예술가를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한 것을, 왜 나쁜 일로 봐야 하는가?

결국 이 사건은 위키피디아가 가진 근본적인 모순을 드러낸다. “모든 지식”을 담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검증된 지식”만 받아들이고, “누구나 편집”할 수 있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높은 진입장벽을 만들어놓았다. 진정한 지식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이런 모순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참고 자료

이 글은 개인적인 견해이며, 위키피디아 정책이나 커뮤니티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